2009/09/14

KBS는 수신료 인상에 앞서...



intro...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소설 <1Q84>를 읽고 있다. 거기에 '덴고'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아버지가 NHK의 수신료 징수원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일요일마다 수신료를 걷으러 다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때마침 인터넷 뉴스를 통해 KBS가 방송 수신료 인상을 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 방송 수신료? 내가 알기로 시청료 또는 수신료는 영어로 license fee다. 영어를 직역하자면 '면허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시청료나 수신료로 표현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왜냐면 우리가 방송사에 지불하는 돈이 프로그램 시청의 대가라거나 전파 수신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대가'라는 개념이라면 KBS나 BBC, NHK는 유료방송이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 공영방송은 국민으로부터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해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해 달라는 요구를 공적으로 위임을 받은 조직(공적 위탁자)이고, 시청자들은 이런 공적 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수상기와 함께 면허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지불하자는 것이 공영방송의 license fee가 성립하게 되는 근거이다. 즉, KBS와 같은 공영방송 조직은 사기업과 달리 경영을 통해 흑자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참고로 2009년 8월까지 KBS는 13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징수방식부터 바꿔라!

한국방송(KBS)이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를 인상하고자 한다면, 그에 맞춰 수신료 징수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지금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합산되어 나온다. 누구나 사용하는 또는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전기요금이니 수신료만 따로 내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 KBS는 우리, 시청자들이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시청자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구조' 속에 가둬 버린 것이다.

KBS는 이렇게 강제적인 징수방식이 자랑스러운지 BBC나 NHK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을 따라하려 한다고 떠벌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청자들, 국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실행은 되지 않고 있다. 즉, 적어도 우리나라보다 공영방송의 철학이나 전통이 오래되었고, 확고한 나라들에서는 이런 징수방식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면 시청자들이 무서우니까.

정치도 그렇지만 방송 역시 국민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KBS는 어떠한가? 아날로그 시절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기에 당연히 부과된 공공 서비스 확대는 커녕 디지털 시대 보편적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철밥통 지키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KBS의 조직도를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조직인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조직에 5천명 이상의 인력이 들어가 있다. 근데 이 조직 외에 KBS에는 다양한 출자회사와 자회사가 있다. 심지어 자회사들을 관리하는 지주회사격의 자회사(e-KBS)까지 있을 정도다. 뭐 MBC-iMBC, SBS-SBSi 등 타 지상파 방송사들도 모두 i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으나, KBS는 태생부터 다른 공영방송 아닌가 말이다.


물론 BBC나 NHK도 수익사업을 위한 별도의 조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KBS가 돈벌이에 열을 올리고, 조직의 비대화와 철밥통화가 옳다거나 그냥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인상은 하되,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

결론적으로, 지난 수십년간 동결되었던 수신료(시청료가 됐든 면허료가 됐든 간에)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KBS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무척이나 많이 있다. 단순히 경영합리화니, 공적서비스의 확대니, 디지털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는 대의명문보다는 수신료를 둘러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대안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