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3

[임시]부산일보 독자위원회

매스커뮤니케이션이란 학문을 처음 접하면, S-M-C-R(-E) 모델부터 시작한다. 송신자로부터 메시지가 채널을 통해 수신자에게 전달되고,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 일대일 대화에서부터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매스커뮤니케이션까지 모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일방향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쌍방향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모델에 하나의 이니셜을 추가한다. E에서 S로 되돌아가는 화살표, 바로 F(feedback)이다. 이제 커뮤니케이션 일반을 포괄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쌍방향(순환)모델이 완성되었다.

매스미디어는 기본적으로 1:多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서 1은 신문사나 방송사이고, 多는 대중이다. 그렇다면 신문사나 방송사는 어떤 식으로 피드백을 받을까?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 댓글이나 SNS 등을 통해 대중들은 대중매체(담당자)로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이 나오기 전부터(그리고 지금까지도) 대중매체들이 즐겨 쓰던 피드백 수단이 있었으니 바로 '대중'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 의견을 듣는 것이다. 신문사의 '독자위원회'나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가 대표적인 경우다.

올해 3월 부산일보는 제11기 부일독자위원회를 꾸렸다. 모두 12명이고, 교수·변호사·학생·시민단체 관계자·외국인 등으로 구성되었다.

어떤 기준에서 이들을 선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부산일보의 잠재적 독자(타깃 오디언스) 가운데 성별·연령별·직업별·학력별 등등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만 전체 신문 독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해 줄 수 있으니까.

독자위원회는 매달 정기회의 갖고, 신문은 지면을 통해 회의 내용을 기사화한다. 그런데 지난달(5월) 정기회의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회의 수준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기사 바로보기 http://bit.ly/12ZMKel

게임의 룰

사실 독자위원회나 시청자위원회와 같은 신문/방송사의 피드백 창구는, '우리 신문/방송사는 그런 걸 운영한다' 또는 '매달 회의를 갖고 있다'가 중요하지 그 조직에서, 또 회의에서 실제 무슨 이야기가 거론되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한마디로 대외홍보용 액션일 뿐, 실제 매체 발전을 위한 실속있는/실제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나 회의는 결코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예전에도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관련 포스트 [방송읽기], "나는 KBS뉴스다!" (바로가기)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고 해도 '게임의 룰'은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이냐면, 독자/시청자위원회를 운영하는 신문/방송사나 그 위원회에 독자/시청자위원들은 저마다 주어진 역할에, 설령 그것이 연기에 불과할 뿐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지난 5월 부일독자위원회의 회의 결과보도를 보고 내가 깜짝 놀란 건, 그 속에는 어떠한 '게임의 룰'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번 회의에는 전체 독자위원(12명) 가운데 5명이 참석했다. 부산일보에서는 독자여론팀장 혼자 참석해, 회의 진행을 맡았다.

우선, 독자들의 '소중한' 의견을 듣는 자리에 실무자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
이게 독자위원회 회의가 그야말로 보여주기식 액션에 불과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독자위원이란 사람들도 '게임의 룰'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독자위원들은 저마다 지난 한달 동안 부산일보 기사를 보고 나름대로 준비해 온 당근과 채찍을 내놓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모두 인스턴트다!

제목이 너무 자극적입니다.
발견 당시의 상태를 너무 자세히 묘사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조금 더 균형잡힌 시선이 아쉬웠어요
조금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요일자 신문에 어린 아이들이 볼만한 내용들이 최근 많아졌는데
신문 활용 교육을 감안하면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인데도 보도 분량이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평소 경남과 울산 기사가 부산 기사보다 상대적으로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경남정보대 센텀산학캠퍼스 광장에 (···)피노키오 작품이 들어서
부산의 명물이 됐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반가웠습니다.
대학생들이 자주 찾은 사이트 등을 소개하는 기사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하게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그들과 달리
기자의 시각으로 맛집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기사들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소고기 맛 비교 체험기는 정말 신선했습니다.
셉테드 관련 기획 기사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다. 좋았다. 재미있었다. 신선했다. 등등
고작 이런 이야기하겠다고 바쁜 시간 쪼개서 모였단 말인가. 무엇보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나 느낌은 앞으로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앞서 부산일보 독자위원회가 -나름대로-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에 따라 구성된 것 같다고 했다. 만약 부산일보가 아무 기준없이 '그냥 아는 사람 위주로 뽑았어요'라고 말할까봐 걱정이다만... 하여간 독자위원들은 자신들이 대중들 가운데 어떤 한 무리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그 회의 자리에 참석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느낌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야 한다. 그게 독자위원들이 지켜야 할 '게임의 룰'이다.

특히 가장 어이없는 독자위원은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황성욱 교수다.
황 교수는 지금까지 좌담회에 두 번 참석했다.

△황성욱 위원=부산일보가 사회 계몽적인 역할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전에 모 신문은 '주폭 시리즈'를 통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부산일보도 이와 같은 주제를 지속으로 고민하고 발굴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취재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보도하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는 신문사가 자체적인 연구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특히 독자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 모든 정보를 한데 모으는 소셜미디어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2013년 3월 좌담회 중)
지난 3월에는 부산일보의 지속적인 계몽적 역할을 촉구했고,
기존 취재관행에서 벗어나 자체 연구능력, 소셜미디어 환경 구축을 주문했다.  

황 교수의 전공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지역언론의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물론 신방과 교수라고 해서 모든 것을 세세하게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산일보 독자위원으로서 '부산일보'만을 위한 맞춤형 대안을 제시해 주는 모습은 필요하다. 어디 가서나, 모든 언론에 다 써 먹을 수 있는 이런 식의 발언은 하나마나 아닌가.

△황성욱 위원=윤창중 씨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 지난 14일 4면에 '기자들은 왜 윤창중을 싫어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자일기가 실렸습니다. 기자들이 왜 싫어하는지보다는 국민들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춰 칼럼을 썼더라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1일에서는 '이슈 들여다보기'코너에서 '개성공단 어떻게 돼가나'를 다뤘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현재 북한과 우리 측이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도 기사는 개성공단 정상화에만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균형잡힌 시선이 아쉬웠습니다.

27일 사회면에는 '실종된 여대생, 저수지서 하의 벗겨진 채 발견'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는데 제목이 너무 자극적입니다. 발견 당시의 상태를 너무 자세히 묘사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뉴스에서는 광고홍보성 기사도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20대와 30대를 대상으로 '경마공원 방문이벤트'를 시행한다는 것과 모 병원이 최근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서비스를 오픈, 수술에 관한 정확한 정보전달과 합리적인 비용에 대한 실시간 상담서비스를 시작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등의 기사입니다. 광고식 기사가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부산일보가 여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홍보를 하더라도 적절한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2013년 5월 좌담회 중)

5월 좌담에서의 발언은 일일이 토를 달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황 교수는 자신이 지적한 '선정성', '균형잡힌 시선', '균형감각' 등의 개념이 얼마나 vulnerable1한 것인지를 정말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냥 대강 쓴 것인가.

만약 내가 신방과 교수이자 독자위원이라면, 지난 한달 동안 부산일보의 주요 이슈를 갖고 -가장 흔한 방식인-'내용분석'을 해 본다거나 과거 유사 사례 분석을 해 본다거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베이해 본다거나 타 일간지/석간지 등과 비교를 해 본다거나 심층인터뷰를 해 본다거나 등등 기존 신문방송학이란 학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방법론을 적용해 보겠다.

사실 신문기사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분석은 일반 독자들이 하기에도 그리 어렵지도 않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을 모를 뿐인데, 독자위원으로서 신방과 교수가 이런 방법을 적용해 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들 좋다고 하지 않겠는가. 신문을 보는/읽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니, 부산일보로서도 전혀 나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