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5개월 아들이랑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 갔다. 거기엔 이미 혼자서 놀고 있는 (적어도 내 아들보단)형아가 있었다. 나랑 아들이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가까이 다가와서 친근함(?)을 표시했다. 그래서 내가 "형아는 몇살이야?" "형아는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는데, 어랏 이 애는 내 말을 이해한 건 지 못한 건 지 딴소리를 한다. 분명히 그 아이의 눈을 보고 물었는데, 그 나이대의 아이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그야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낸다. 그것도 똑같은 말을 여러 번... 내가 분명히 -내 아들에게 하는 것처럼- "어, 그랬어"하고 반응을 해 줬음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해 보였다.
내 아들이 놀이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노는데 졸졸 뒤따라 다니며 '참견'을 한다. 예를 들면, 단지 내 놀이터를 나와 내 아들은 '용(dragon) 놀이터'라고 부른다. 거기 미끄럼틀이 '용' 모양이어서 그렇다. 내 아들이 거기 용 모양을 보고 '용'이라고 하면, 내가 '어, 그렇네. 용이 입을 아~ 벌리고 있네' 뭐 이런 식으로 대꾸를 해 주는 편이다. 근데 옆에서 이 아이가 "용이 아닌데, 용이 아닌데"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대꾸해 주기 싫었지만 "어? 용이 아니야?"라고 반응해 준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반응은 없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할 뿐이다.
내 아이는 35개월, 누가 몇살이야라고 물으면 '네 살'이라고 답한다. 근데 예닐곱살 정도 되는 아이랑은 확연히 노는 게 차이가 난다. 근데 이 예닐곱살 먹은 아이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말을 걸거나 하면 노는 수준에 차이가 생겨서 내 아이가 제대로 놀지 못한다. 예닐곱살 아이가 네 살 수준에 맞춰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제발, '너 저리 좀 가줬으면 좋겠는데...'싶었다.
처음엔 아이 혼자 놀이터에 나와 노는 줄 알았다. 둘러보니 놀이터 한쪽 구석에서 잠자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빠인 듯 하다. 이 아이가 큰 소리로 뭐라뭐라 하면 한번씩 흘끔 쳐다본다. 그러고는 이내 읽던 책을 계속 읽는다. 내가 그 사람한테 가서 '당신이 보호자야? 그럼 이 애 좀 따로 놀라고 해 주쇼'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물론 차마 그러진 못했다. 혹시나 상처 받을까봐...
하여간 내 아들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하진 않지만 옆에서 계속 앵앵 거리는 것 같아 놀이터에서 노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들 자랑 같지만 내 아들은 스스로 끊임없이 새로운 놀거리를 찾는 편이다. 미끄럼틀부터 시소 등등 놀이기구를 하나씩 다 타 본 다음에는, 나뭇가지를 모으기도 하고, 나랑 '카페 놀이'를 하기도 하고, 돌멩이나 개미를 찾아 살펴보기도 하고 뭐 나름 '놀이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해 볼 수 있는 건 뭐든 다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번 그 아이가 끼어드는 것이다. 같이 노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와서 쫑알쫑알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교감이나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중에 다른 아이들도 놀이터에 왔는데, 또 거기가서 소리높여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그제서야 책을 읽던 아빠인 듯한 작자가 일어나 아이에게 '소리치지 마!'라고 주의를 준다. 그 때 불현듯 깨달았다. 저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저 아빠란 인간의 문제구나... 아빠와 아들이 서로 대화라는 게 없고 일방적인 지시(?)같은 것만 이뤄지는 것이었다.
저런 인간이 아빠랍시고... 에휴...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든 간에, 그게 당장 당신의 지식을 채워줄 지는 몰라도 아빠로서의 당신의 인생, 그리고 아이의 인생은 점점 피폐해 지고 있음을 나는 봤다. 제발 어디 가서 주말에 아이랑 놀이터에 가서 놀아줬어요...라고 이야기하진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