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토박이인 나는 정확히 1997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전남 목포에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남 무안군 삼향면 지산리에 있는 모 예비군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곳은, 목포와 신안의 예비군들을 상대로 1년 내내 예비군 훈련일정으로 빡빡한 일상이 반복되던 그런 곳이었다. 예비군들이 들어오면, 내 말투와 억양을 듣곤 조건반사식으로 "너, 경상도에서 왔냐?"란 질문을 던졌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1997년 겨울이 다가오면서 전국은 대선의 분위기로 물들었다. 어떤 예비군들은 나에게 김대중 후보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참고로 故김대중 前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하의도 역시 우리 대대에서 예비군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그들에게 있어 '김/대/중'이란 인물은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자면-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던 나로서는 다소 시큰둥한 반응으로 되돌려 주었다.
1997년 12월 어느날, 육공 트럭을 타고 투표를 하러 시내에 나갔다 왔다. 내가 누굴 찍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날 밤(정확히는 그 다음날 새벽), 위병소 근무를 나갔을 때 멍 하니 어서 근무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대 아래쪽 마을에서 '와-'하는 함성이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대한민국 만세!" 소리도 들렸다. 그 이후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오는 그 지역 예비군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화제에 올렸다. 그렇게도 원하는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