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5

entropy


엔트로피 entropy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연구원


<종말>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제레미 리프킨. 학부시절 뉴미디어와 관련된 리포트를 쓰기 위해 <소유의 종말>을 억지로 읽었던 기억은 있다. 당시에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다소 뻔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어렵고, 길게 늘어놓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직후 각 방송사별로 나온 특집 프로그램을 챙겨 보다가 노 전대통령의 서재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에 눈길이 갔다. 바로 스티글리츠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와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수소혁명>이었다. 과연 노 전대통령은 제레미 리프킨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MBC스페셜 캡처

<엔트로피>는 제레미 리프킨의 초기 저작(1980년)이다. 어떻게 보면 뒤이어 나올 <종말>시리즈의 서막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353페이지나 끌고 나갈만한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는 없었다. 물론 책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기에, 그의 주장들이 -당시에는 참신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흔한 주장이 되어 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이해하는데 있어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 그리고 열역학 제1법칙 등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열역학 법칙은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2법칙)으로 이뤄져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등이 공헌한 현재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이성이 감성보다 우선하며, 자연은 통제가능하며, "역사는 질서있고 완벽하게 예측가능한 상태로의 지속적인 진전"하고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실제로 우리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그리고 대학4년 등 고등교육을 받으며 이와 같은 세계관을 뼈속 깊숙히 받아들였다.

이제 리프킨은 그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엔트로피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대치하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완벽을 향한 끊임없는 성장과 진보가 아니라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체의 활동으로 오염은 늘고 유용한 에너지의 총량은 줄어들며, 거대한 무질서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결론부분으로 나아가면, 이제 리프킨은 그동안 현대인을 지배해 온 기계론적 패러다임을 대치해 새로운 엔트로피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저엔트로피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엔트로피 사회란, 석유나 가스와 같은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의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흐름의 절대량을 줄여 적은 양의 에너지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좀더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으로 실현될 수 있단다. 즉,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라는 격언을 받아들여 '소비'나 '물질적 풍요'보다 "검소하고 질박한 생활을 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인이 숭상해 마지않는 물질적 진보, 효율, 전문화 같은 개념을 버리고, 파괴되고 버려졌던 가족, 공동체, 전통의 가치가 되살아나 모두가 건강하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다.

책의 전반부에서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등을 인용하며 현대적 세계관(기계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문제제기를 하는 것까지는 뭐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결론 부분으로 나아가며 그가 내놓는 주장들은 대단히 낭만적이다. 다시 말해 비현실적이란 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차피 우리는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오염은 증가하고 유용한 에너지는 줄어드는 역사의 과정 속에 놓여있다. 이 자체를 되돌리수는 없다. 하지만 엔트로피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니 다들 고대 아니 산업혁명 이전 시기로 돌아가 유용한 에너지를 가능한 적게 쓰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의 전부이니... 이것 참...